이 시가 지금 이 즈음의 내 심정을 꼭 닮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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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취의 피안

 

--- 김수영, 1954.

 

 

  내가 사는 지붕 위를 흘러가는 날짐승들이

  울고 가는 울음소리에도

  나는 취하지 않으련다

 

 

  사람이야 말할 수 없이 애처로운 것이지만

  내가 부끄러운 것은 사람보다도

  저 날짐승이라 할까

  내가 있는 방 위에 와서 앉거나

  또는 그의 그림자가 혹시나 떨어질까 보아 두려워하는 것도

  나는 아무것에도 취하여 살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번씩 찾아오는

  수치와 고민의 순간을 너에게 보이거나

  들키거나 하기가 싫어서가 아니라

 

 

  나의 얇은 지붕 위에서 솔개미 같은

  사나운 놈이 약한 날짐승들이 오기를 노리면서 기다리고

  더운 날과 추운 날을 가리지 않고

  늙은 버섯처럼 숨어 있기 때문에도 아니다

 

 

  날짐승의 가는 발가락 사이에라도 잠겨 있을 운명─

  그것이 사람의 발자국 소리보다도

  나에게 시간을 가르쳐주는 것이 나는 싫다

 

 

  나야 늙어가는 몸 위에 하잘것없이 앉아 있으면 고만이고

  너는 날아가면 고만이지만

  잠시라도 나는 취하는 것이 싫다는 말이다

 

 

  나의 초라한 검은 지붕에

  너의 날개 소리를 남기지 말고

  네가 던지는 조그마한 그림자가 무서워

  벌벌 떨고 있는

  나의 귀에다 너의 엷은 울음소리를 남기지 말아라

 

 

  차라리 앉아 있는 기계와 같이

  취하지 않고 늙어가는

  나와 나의 겨울을 한층 더 무거운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나의 눈이랑 한층 더 맑게 하여다오

  짐승이여 짐승이여 날짐승이여

  도취의 피안(彼岸)에서 날아온 무수한 날짐승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