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2013년 3월 28일

from 金洙暎 2013.03.28 15:44

 

 

모처럼 짬이 나서 펼쳐든 책에서, 벼락같은 슬픔에 북받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렇게 눈물을 쏟아내며 독서를 한 경험은, 스무살 이래 실로 20여년만의 일이 아닐까 싶다.
주문한 책을 받아보고 처음엔 '김수영'이라는 단어와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 표지의 인상 때문에, 그리고 그동안 별로 드러나지 않았던 부인의 출현에 '지금 왜?'라는 의문도 좀 작용했었던 때문인지, 이런 감동에 휩싸이게 될 줄은 도저히 예감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동안 김현경 여사가 김수영이라는 공개적인 존재의 곁에서 배제된 것처럼 기억되는 것은, 책을 다 읽고나서 짐작컨대, 출판사측의 무심한 처사 때문이었을 수도, 그리고 무엇보다 김수영을 남성성으로 독점하고 신봉하려는 어떤 광신도들의 광증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 혼자 생각해보기도 한다.
이 책은 여느 문학작품에게 가해지는 것처럼, 비평하고 재단하는 대상의 것이라기 보다는 그 자체로 김수영에 대한 생생한 증언으로 보는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사사로운 에피소드 공개의 의미라기 보다는, 시인의 육신과 정신의 새롭고 경건한 발굴로서의 가치가 발하고 있다.
더불어 본문에 나오는 표현처럼, '아방가르드'하게 슬프고 괴롭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펼쳐져있기도 하고.
지금은 절판된 김수영 전집 3권(별권)에 수록된 동료문인들의 수영에 대한 증언들과는 또다른, 일생의 반려자이자 연인, 그리고 가장 첫번째 독자로서 풀어놓는 증언들! 안광(眼光)에서 뚝뚝 묻어나는 글들이 수영의 시이자 산문이라면, 부인의 증언은 겨드랑이에 송글 맺혀있어 미처 드러나지 않았던 사연들이기에 더욱 반갑고 절실하게 다가온다.
괴팍하고 흠결많던 시인의 정신과 처절한 고뇌와 설움은 그렇게 새로운 각도로 세상에 제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스무살에 처음 빠져들었던 수영은 내게 완결된 세계가 아니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의 나의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며 여전히 나를 두드리고 있는 세계는 완결된 것일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런 미결의 세계를 새삼 깨닫게 되는 오늘, 가뜩이나 무기력해지고 있던 내 안의 늙어가는 세포가 여전히 세상에 속하고 있기에 수영을 접할 수 있고, 또 그래서 고무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감사한다.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그가
오늘따라 가슴 저미도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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