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기다렸던 기억

from note 2010.04.1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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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일큐팔사>... 난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사실, 하루키에 대한 관심이 나는 없다.
아니, 이제 문학에 대한 관심이 예전 같지 않게 된지가
벌써 10년은 넘은 것 같다.
<일큐팔사>가 대단하긴 한가보다.
언젠가 전철을 탔더니, 같은 열차칸에 3-4명 정도가
이 책을 읽고있는 풍경을 목격한 적도 있으니.

위에 링크한 기사에도 이른 시간부터 판매시작한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나도 서점에 깔리기 전에 미리가서 기다렸던 책이 있었을까...하고
기억을 곱씹어보니... 한 권 생각난다!
박상우의 <시인 마태오>.
신촌의 홍익문고(아직 있나?)에 달려가서
오후에나 나온다는 신간을 서점앞에서 어슬렁거리며 기다렸던 기억...
허나,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내가 그나마 기억하는 박상우의 소설은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뿐.
사실, 얼마전 기형도 전집을 다시 들춰봤다가
이내 내려놓고 말았다.
기형도의 시를 읽고 가졌던 예전의 그 느낌은
이제 내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여전히 지금의 나는, (고전을 제외하고)
문학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는 뜬금없게도(!)
김수영의 <달나라의 장난> 한 구절을 떠올리곤 한다.

"어느 소설(小說)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生活)이며"


---






_달나라의 장난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 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 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都會) 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小說)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生活)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 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餘裕)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別世界)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機) 벽화(壁畵)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運命)과 사명(使命)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放心)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記憶)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시집 『달나라의 장난』,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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