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복

from note 2009.11.24 17:09
오랜만에 중학교 은사님을 뵙고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지난 5월에 뵙자고 청했던 것을, 한사코 거절하셔서(아마도 제자를 부담스럽게 하지 않기 위해) 뵙지 못하고
이제사 뵙게되니 한 2년 만에 뵙는 것 같다.
죄송스럽게도, 굳이 당신께서 계산하신다고해서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기만 하였다.

생각해보면, 우리 세대에 '스승복'이 있기 쉽지 않았다고들 하는데,
나는 중학교때나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시절, 심지어는 화실다니던 때까지
담임으로 모셨던 선생님이 다 존경스러운 분들이신지라, 내게 '스승복'은 많은 편이었다고 생각하곤 한다.
내가 그분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불완전한 인간의 전형에서 따로 특출나게 위대한
면모를 발견하고 감동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그런 평범한 학교 울타리에서 나를 비롯해 평범한 친구들과 맺은 관계와,
아직은 미성숙했던 학생시절 나름대로 부침을 겪었던 시간들 한가운데에는
항상 믿음으로 대해주셨던 그 선생님들이 계셨다.
당시 중학교시절이나 마흔을 앞두고 있는 지금이나, 선생님을 뵈면 나는 늘 학생이 되고,
그때나 지금이나, "잘했다, 못했다" 보다는 "너를 믿는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마음이 움직인다.
부모와 가족 외에 스승과 제자라는 사이만큼 그런 신뢰가 형성되는 인간관계는 흔치 않을 듯 싶다.
내가 그 선생님들을 향한 존경심에는, 믿음으로 학생들을 대해주셨던 그 시간들에 대한 존경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고, 그리고 그 시간은 오늘같은 날에도 유효하다.

며칠전, 졸업후 근 10년만에 만난 학교선배와 술자리를 가졌다.
오랫동안 학원에서 입시를 지도한 그 선배와 이런저런 얘기 중에는 교육에 관한 화제도 있었다.
한창 얘기 끝에, 그 선배는 이런 질문을 하더라 ;
"나중에 자식을 낳아서 교육을 시킬 때, 실력은 좋고 인격은 좀 덜 존경스러운 선생님과,
실력은 좀 부족해도 인격적으로 존경스러운 선생님 둘 중, 누구에게 자식교육을 맡기겠는가"
술자리에서 묻고 답하기에는 질문자체가 좀 거칠기도 하고, 대답하기에도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지만,
나는 후자를 택했다.
그에 대한 여러가지 이유를 끌어다댈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겪었던 경험을 통해서나. 교육의 가치와 가능성에 대한 나의 생각을 기준으로 삼자면,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 선배는 또, 교육(툭히, 자식교육)에는 아무래도 '경제력'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만,
글쎄... 그 생각의 여러 곡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나는 좀 생각이 다르다.
다들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에 교육의 의미를 두고 있는 시대라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교육만큼 잠재적 성과에 대한 인내와 더불어 오랜 시간이 걸리는 가치는 그닥 많지 않다.

내 자신을 알려면, 부모와 친구, 그리고 스승을 보라는 말이 있다던가.
돈을 대단한 밑천으로 삼고 있지 않은(못한) 나의 현재 처지가 외려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나를 믿어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시니, 그것이 대단한 행운이고 내 든든한 밑천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마음을 갚음하기에 아직 내가 많이 부족한데, 그래도 선생님은 밥도 사주시고, 너를 믿는다 하시니,
선생님이 권해 넙죽 받아먹은 소주로 낮부터 얼굴이 벌겋도록 알딸딸하지만,
이것이 행복감이라는 생각에 금세 진로 한 병을 다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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