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 기형도, 김소진

from note 2009.11.19 23:23
기형도.
새로운 후배들을 맞이하는 신입생 환영회 술자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한창 술들이 거나해질 무렵이었을 것이다.
한 선배가 어수선한 술자리의 와중에 우뚝 서서 외쳤다;
"오늘이 기형도 시인의 X주년 기일이다. 다함께 기억(추모)하며 한잔 하자"고.
기형도를 모르는 신입생이나, 혹은 재학생, 알거나 모르거나,
다분히 강압적인(?) 권주의 분위기에 술잔을 머리 위로 올려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기형도의 시를 무척이나 좋아했었지만, 그 장면은 너무도 싫었다.
아직까지도 좋지 않은 기억으로 떠오르는 걸 보면, 싫어도 너무 싫었던 모양이다.


김소진.
어느 교양수업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학생수가 많아 대형 강의실에서 진행된 수업이었다.
큰 강의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공명하는 분위기 속에 수업이 시작할 무렵,
당시 간호대를 졸업하고 그림이 좋아  편입해왔던 한 누나가
내 옆자리에 다가와 앉으며 나즉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오늘 소설가 김소진이 죽었다"라고. "너 혹시 소식 들었냐"고.
무덤덤한 듯, 나직한 톤의 전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떨칠수없이 아릿한 느낌이 들었다.
그 기억이, 그 느낌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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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약속이 있어 오랜만에 시내 대형서점에 들렀다.
언제부터인가 대형서점에 깔려있는 그 무수한 책들을 보면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구체적으로 무엇에 연유하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현기증이 날 정도로 혐오에 가까운 감정이 들 때도 있다.
과연 책만드는 일에 종사하여 밥먹고 사는 놈 맞나 싶을 정도로.
반면, 가끔 찾아드는 우리 동네 헌책방이나,
동교동로타리의 헌책방에서 먼지털어 살펴보는 책장의 풍경속에서는.
왠지 필요이상의 안도감을 느끼곤 한다.
이것도 일종의 병일텐데.
애증일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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